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존 테리 (문단 편집) ===== '[[첼시 FC|더 블루스]]'의 [[주장|캡틴]] ===== || [[파일:external/i.eurosport.com/1655420-35106335-2560-1440.jpg|width=600]] || 2003-04 시즌, 테리는 계속해서 마르셸 드사이와 함께 첼시의 수비진을 이끌었다. 당시 첼시 감독이었던 [[클라우디오 라니에리]]는 드사이가 부상으로 경기를 뛰지 못할 때면 항상 테리를 주장으로 삼았고 [[윌리엄 갈라스]]와 함께 또다른 수비 조합을 결성하게 했다. 테리는 갈라스와도 훌륭한 팀워크를 맺고 첼시를 리그 준우승과 챔피언스 리그 4강으로 이끌어냈다. 그러던 2004년 여름, 로만 아브라히모비치 구단주는 라니에리 감독을 경질한 후 첼시의 황금시대를 이끌어낼 인물을 선임한다. 그는 바로 [[주제 무리뉴]]였다. 무리뉴는 첼시로 부임하자마자 테리를 공식적으로 주장으로 삼고 전폭적인 신임을 아끼지 않았다. 테리는 그의 신임에 힘입어 '로얄 블루스'시대를 이끌어가는 핵심 멤버로 군림한다. 2004-05 시즌, 첼시는 무리뉴의 완벽에 가까운 지략과 탄탄한 선수진에 힘입어 EPL을 문자 그대로 씹어먹었다. 리그 25경기 무실점, 리그 최소 실점 (15실점)[* '''2020년 현재까지도 EPL에서 깨지지 않은 역대급 기록이다.'''], 역대 최다 승리 (29승)[* 이 기록은 16-17시즌의 첼시가 30승을 기록하며 한 번 더 갈아엎었다.][* 이 기록은 다시 17-18시즌의 맨시티가 32승을 거두며 깨지게 된다], 역대 최다 승점 (95점) 등 유수한 기록들이 바로 이 시즌에 달성되었다. 테리 또한 이 시기에 엄청난 활약을 선보이며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또한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골을 기록하는 등 훌륭한 활약을 선보여 챔피언스 리그 최고의 수비수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세계 베스트 11에서 수비수 부분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테리는 2005-06 시즌에서도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절정에 달하는 폼을 지속적으로 선보이며 첼시가 승점 91점을 획득해 리그 2연패를 달성하는데 크게 기여했으며 2006-07 시즌에도 엉덩이쪽 디스크에 문제가 생겨 수술을 받는 바람에 여러 경기를 뛰지 못한 것을 제외하면 훌륭한 활약을 꾸준히 선보였다. 그러던 2006년 10월 14일 레딩 전에서 [[페트르 체흐]]가 끔찍한 부상을 당해 병원으로 실려갔고 그를 대신해 투입된 [[카를로 쿠디치니]]까지 부상으로 아웃되자, 테리는 그들을 대신해 골키퍼 노릇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의외로 골키퍼 역할을 잘 해내 팀이 1:0 승리를 거두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첼시는 아쉽게도 맨유에게 밀려 리그 2위를 기록해 리그 3연패를 달성하진 못했다. 칼링컵 결승전 때는 [[아부 디아비]]에게 얼굴을 맞으면서 그대로 실신하였다. 다행이 [[안드리 셰브첸코]]가 말려들어간 테리의 혀를 잡아주어 기도가 막히지 않게 도와주었고[* 혹자들은 이것이 셰브첸코의 첼시 입단 후 최대 업적이라고 할 정도였다. 이 일화는 [[위기탈출 넘버원]]에서도 소개되었다.] 의료진들도 급히 테리를 치료를 해주면서 테리는 그 이후에도 선수 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2006-07 시즌이 끝난 뒤, 테리는 구단에 주급을 대폭 늘린 계약 조건으로 재계약을 체결할 것을 요구했다. 이후 기나긴 협상 끝에 7월 말에 13만 천 파운드에서 13만 5천 파운드 사이의 주급을 받는 조건 하에 제계약을 체결했다. 테리는 이로써 당시 EPL 선수들 중 가장 많은 주급을 받는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이후 맞이한 2007-08 시즌에서, 그는 시련에 직면했다. 2007년 12월 16일 아스날과의 경기에서 [[에마누엘 에부에]]에게 발이 밟히는 바람에 발가락 뼈 3개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이로 인해 테리가 여러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게 되자 가뜩이나 이 시즌에 수비 불안으로 성적이 좋지 않던 첼시는 급격히 흔들렸다. [* 대표적으로 [[아스톤 빌라]]와의 홈경기에서 4-4로 비긴 경기가 있었다. 2003년 박싱데이 찰튼 원정 4:2 패배 이후 첫 4실점 경기였다.] 그래도 당초 석달 동안 재활받아야 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빠른 속도로 회복하여 토트넘과의 리그컵 결승전을 앞두고 기적적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웨인 브리지]]의 대삽질로 연장전 끝에 준우승했다. 테리는 [[아브람 그랜트]]와 함께 첼시의 전열을 가다듬고 성적을 끌어올려 리그 준우승, 챔스 결승 진출을 이루며 유종의 미를 이루었다. 또한 무리뉴 시절 번번히 챔스 4강에서 고배를 마시던 첼시는 아브람 그랜트의 지휘하에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까지 올라 마침내 고대하던 빅이어 획득을 눈앞에 뒀다. 그런데 리그 최종전 볼튼과의 홈경기에서 테리는 체흐와 충돌하여 팔꿈치 부상으로 병원에 실려가는 일이 벌어져 챔피언스리그 결승 출장이 불투명했으나 불굴의 의지로 결승전에 선발 출장하였다. 테리는 결승전 상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훌륭한 활약을 선보이며 맨유의 공세를 [[호날두]]의 헤딩골을 제외하고 모조리 저지했다. 그후 승부차기에서 모든 것이 결판나게 되었다. 체흐가 호날두의 슛을 저지해내면서 승부는 첼시 쪽으로 기울었다. 이제 다섯 번째 키커로 나선 존 테리가 골을 넣는다면, 첼시는 승부차기에서 5:3의 스코어로 승리를 거두어 빅이어를 획득할 수 있었다. '''그런데...''' || [[파일:external/i.telegraph.co.uk/terry1_673098c.jpg|width=400|width=400]] |||[youtube(f3tWqZ0pNC8, width=400)]|| 블루스의 캡틴은 그만 미끄러지며 공을 찼고 그의 슈팅은 골대를 맞히고 말았다. 그후 첼시는 아넬카의 실축으로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그로서는 그야말로 최악의 하루가 아닐 수 없었으리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